종이책이 멸종해야하는 이유
디자인리톨 2010/11/12 17:42 |종이책은 감성이다? 맞다
사람들은 흔히들 전자책이 감성적이지 않다고 한다. 종이책이 주는 활자의 향기와 책을 넘기는 인터페이스의 촉감은 사실 전자책 따위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다. 나 역시 어린시절 재밌게 읽은 슬램덩크 전권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으며, 이 녀석들을 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녀석'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들은 단순히 물건이 아닌 내 추억의 동지이기 때문이다. 책은 종이 인쇄물의 집합일 뿐이지만 그 안에 있는 텍스트들은 나의 우상이고 친구이자 선생님이지 않던가. 나 역시 이 점에는 100% 동의한다. 하지만 그래도 종이책은 사라져야한다. 왜?
종이책의 탄생 이유가 종이책의 종말을 이야기 한다
8세기 중엽까지 유럽에서는 양피지가 대세였다. 양피지는 파피루스에 비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더 고급스러우며 더 비쌌지만,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 대량 생산이 힘들고 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가격 때문에 상류층의 지식 독점에 크게 공헌했다. 상류층에게 책이란 당연히 양피지로 만든 고급의 물건이었고, 지금의 부동산과 같은 투기 목록으로 관리되었다. 종이책을 처음 접한(파피루스가 아닌 초지법에 의해 생산된 종이) 상류층에게 그것은 책이 아닌 저질 재료의 묶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이 바라봤던 책의 가치를 모조리 부정하는 종이책의 등장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종이책은 빠른 속도로 그 위력을 키워나갔고, 결국 양피지 책의 가격을 폭락 시키면서 더이상 신작 양피지 책이 재산목록으로써의 가치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드디어 책이 본질적인 목적인 지식과 문화 전달에 더욱 충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종이책이 양피지를 몰락하게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더 싸고 더 빠르게 지식을 퍼뜨릴 수 있었던 것. 양피지는 나름의 감성이 없어서 밀려났을까? 종이책이 훨씬 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해서?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그 둘의 운명이 갈린 이유는 기능과 효율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 있다. 책이라는 기록 매체는 기본적으로 전파를 목적으로 제작된다. 따라서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다면 그 쪽이 책의 본질에 더 가깝다. 양피지는 이런 측면에서 종이책에 완패했고,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중요한 유물의 하나'로 역할을 변경하여 남아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종이책도 그런 운명을 맞이해야 할 때가 왔다.
<아마존의 킨들. 물론 킨들은 종이책을 대체하기엔 형편없는 제품이다.>
'킨들의 위대한 탄생'은 종이 종말론을 예고하다가 많은 욕을 얻어먹고 있던 엘빈 토플러에게 빛줄기 같은 일이었다. 세계 최고의 온라인 마트인 아마존에서 종이책을 대체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야심차게 내 놓은 전자책 킨들은 수많은 종이 회의론자들에게 행복한 떡밥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킨들의 전자잉크 시스템은 다른 LCD에 비해 눈이 편하다는 장점을 제외하고는 책과의 대결에서는 기능적으로 크게 앞서는 점이 없었는 데다가 책 몇 십권에 해당하는 가격 + e북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점에서 가격 경쟁력까지 떨어지는 문제점을 보이며 큰 성공을 거두지 못 했다. 하지만 킨들은 전 인류에게 커다란 메세지를 던졌다.
"종이책이 과연 전자책 보다 더 본질적 책에 가까운가?"
저~ 위에서도 언급한 것 처럼 책은 지식 전파가 가장 최우선의 가치이다. 비교해 보자. 종이책 vs 전자책. 두 매체 중에서 어떤 것이 과연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싸게 지식을 공급할 수 있을까? 와이파이, 3g망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는(아직 모든 책을 다 살 수는 없지만) e북과 수많은 유통과정을 거치는 종이책은 과연 어느것이 더 효율적인 배급 방식인지 쉽게 답이 나온다. 유통마진이 줄어들면 가격이 싸지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전파를 통하면 더 빠르다는 것은 서점 직원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가격 면에서는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자책의 가격은 당연히 갈수록 떨어져 갈 것이고 곧 극복 될 것이다. - 좀 더럽지만 광고를 넣는 방식이라면 전자책의 가격은 더더욱 떨어질 것이다. 지금도 서점에는 수많은 책이 단지 진열되어있고, 아마도 대부분은 결코 팔리지 않을 것이다. 결코 팔리지 않는 책은 결코 지식을 전달할 수 없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이 결코 팔리지 않는 책들 때문에 얼마만큼의 자연이 훼손되고 얼마만큼의 동물들이 생활의 터전을 잃는지를 생각한다면 책의 감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 결코 팔리지 않는 책 덕분에 책 가격이 오르기 까지 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텍스트다. 책을 넘기는 감성이 텍스트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종이책에 써 있으면 감성적인 어린왕자이고 전자책에 써 있으면 이진수 코드가 쫘라락 펼쳐지는 메트릭스 속 어린네오가 되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감성을 이야기 하며 전자책을 어색해 하는 광경은 과거 종이책을 거부하던 양피지 족의 모습과 닮아있다. 또한 CD가 생겨날 무렵 LP음반의 감수성을 이야기 하던 당시의 우리와 닮아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의 감성을 파괴했던 종이책과 CD가 이제는 사람들의 감성품목이 되어 전자책과 mp3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나는 LP를 CD가 대체했듯, mp3가 CD를 대체했듯이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 생각에 자신 만만하다. 왜냐구? 아이패드가 나왔으니까!
아이패드(등)는 더 본질에 가까운 책이다
<아이패드의 아이북스. 종이책, 종이신문의 멸종을 가속화 하다>
사실 내가 종이책(신문)의 멸종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이유는 아이패드다. 기존의 책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흉내내는 인터페이스와 디자인, 전자책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의 증폭, all in one 제품이 가지는 휴대성 까지 아이패드는 모두 다 갖춘 제품이다. 거기에 발전된 디스플레이와 인터페이스를 통한 전혀 다른 타입의 가능성은 종이책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다. 편리한 책갈피, 검색등 이거 정말 좋은데 말로 다 할 수도 없고 뭐 그렇다. 내가 킨들을 좀 무시했지만, 아마존에서도 이미 전자책이 도서 판매량의 50~60%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니 전자책의 제2의 mp3가 될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갤러시탭 등의 타블렛 피씨가 출시 되면서 시장이 본격화 되면 종이책의 설자리는 더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종이책이 이런데 신문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모든 메이져 신문사가 모바일 시장에 진출했고 앞으로의 주력이 멀티미디어 기기라는 것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종이책이 멸종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거듭 말 하지만 전자책이 종이책에 비해 본질적 책에 더 가깝다는게 내 생각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 지식을 전파! 힘들게 외국책방과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면서 원서를 어렵게 구해(그나마도 구하면 다행인 경우도 많다) 공부를 해야했던 많은 공부벌레들의 이야기는 아마도 전설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초도 물량이 딸려서 해리포터 마지막 권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도 허허허 그땐 그랬지 하며 자료화면으로 방송에서 틀어줄지 모른다. 혹자는 이런 풍경에 향수를 느끼겟지만, 과연 그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물량이 딸려 손에 쥐어지지 못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지 상상만 해도 안타깝다. - 물론 아이패드도 물량이 딸려서 못 팔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이것은 현재 아이패드가 타블렛 피씨 중에서 유일하게 쓸만한 제품이기 때문이고, 이런 문제점은 곧 사라질 것이다. 원하는 누구나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지식을 어디에서든지 받아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책의 본질이고 전자책은 그 본질에 가깝지 않을까?
당신의 감성이 나무를 벤다
<3억 5천만권 이상 팔린 해리포터. 과연 몇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갔을까?>
지금부터는 책의 본질의 문제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환경의 문제. 사람들이 전자책을 받아들이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종이책이 주는 감성에 있다. 종이책이 주는 감성은 나 역시도 동감하고 있는 바이고 그런 이유로 아직도 슬램덩크 전권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매우 지구 전체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환경에 대해서도 많은 감성을 느낀다. 물론 나 같이 매우 지극히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이 훼손되는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며 아픔을 느끼고 감성적 상처를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상황은 충돌이 있다. 종이책이 감성인데 종이책은 나무를 잘라 만든다....?
해리포터로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일단 책 한권의 평균 무게가 500~1000그램 이라고 할 때 해리포터를 700g으로 대략 잡고(다양한 버전이 있어 대략 잡는다) 3억 5천만권을 계산해 보자. 0.7kg * 350,000,000 = 245,000,000t
<해리포터를 만드는데 대충 계산으로 대충 2억4천5백만 톤의
종이가 대충 들어갔다. 물론 팔린 것만 봤을 때 그렇다는 거다>
그렇다면 2억4천5백만 톤의 종이는 나무 몇 그루 일까? 종이 1t을 만드는데 약 17그루의 나무가 들어간다고 하니,
17 / 245,000,000 = 14411764.70588.......35그루 라고 나온다.
<해리포터를 만드는데 대충 계산으로 대충 1천4백만 그루의 나무가 잘렸다
물론 팔린 것만 봤을 때 어림잡아 이렇다는 이야기다>
내 계산법은 당연히 정확하지 않다. 오차가 몇 십만 톤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적어도 1천만 그루에 가깝거나 훨씬 많게 나무들이 잘려나갔을 거라는 점이다. 대략 1평방미터에 5그루의 나무가 심어진다고 하니 200만 평방미터의 나무가 잘려나갔다고 볼 수 있다. 독도가 27,800평방미터라고 하니까 약 독도 100개 만큼의 면적으로 밀림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이건 나의 계산이고 정확한 책의 무게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아주 먼 근사치 정도라고만 보면 된다. 좌우지간 내 계산으로 해리포터 전권의 판매량을 채우기 위해 독도 100개 면적의 나무가 잘려나갔다.
숲은 종이의 재료이기 이전에 수 많은 생명체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숲을 자르면 자를 수록 멸종위기 동물리스트는 늘어만 간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멸종위기의 동물을 보며 슬퍼하지만 종이책이 전자책이 되는 것에는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에 대해 나는 좀 의아하다. 물론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책은 몇 천만 권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런 소비가 모여 큰 시장을 만들고,그 큰 시장을 유지하고 불려나가기 위해 나무들은 더더욱 잘려나간다.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도 생산 과정에서 환경이 오염되는데 종이책과 환경파괴를 연관시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종이는 단순히 나무를 자른다고 만들어지지 않으며, 종이 제조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게다가 유통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오염 물질이 배출된다. 단순 비교일지 모르겠지만, 나무도 안 자르고 유통도 줄어드는(전자책 유통이 있지만 책보다 빈도수가 현저히 낮아진다) 전자책 쪽이 훨씬 환경 파괴가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정도면 종이책이 주는 감성을 포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종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앨빈토플러나 빌게이츠와는 달리 종이 자체는 앞으로도 그 사용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종이책과는 다르게 메모지나 노트, 문서등 종이가 기능적으로 더 유리한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그 용도의 본질을 잘 재현해 내면서 편리한 매체가 남고 그렇지 못한 매체는 실패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책이라는 매체에서는 종이가 전자기기에 미치지 못 하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 효율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에서 압도적인 전자책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종이가 더 좋고 효율적인 분야에서는 종이가 계속 쓰일 것이며, 그런 분야는 너무나도 많다. 물론 나는 그런 분야를 줄일 수있는 매체의 탄생을 바라지만, 현재로서는 전자책을 제외하고는 종이를 이길만한 다른 매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점에서 비데는 참 아쉽다. 종이를 대체할 줄 알았는데 비데를 쓰면서 나는 휴지를 더 쓰고 있다.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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